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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의 첫 번째 백만 장자 가 세상을 떠났다

2008/7/7 16:23:00 31

광저우의 첫 번째 백만 장자 가 세상을 떠났다

광저우의


진흥창


제7회 전국 정협위원 광저우 첫 백만장자.

본적은 절강영파, 1919년생, 1947년 광저우, 1952년 의류 가공점을 열었다.

1979년 7월 1일 광저우 최초의 자영업자 면허증을 수령하고 1985년 또 다른 기업가 3명과 광저우 4대 백만장자, 1989년 광저우 최초의 개인 기업 영업 면허증, 번호이삭 사V1 부자 0001호, 회사에서는 광저우시 창흥 패션유한회사 (현광저우 창흥 실업 유한회사)로 이름을 올렸다.

2008년 6월 29일 서거하여, 향년 90세이다.


본보문 (기자 구영분)은 한 편의 차로 집을 지었고, 광저우 첫 번째 사영 기업주, 첫 백만장자 진흥창은 지난달 29일 병으로 사망해 향년 90세였다.

고별식은 어제 오전 광저우시 장례식장 백운청에서 거행되었다.


본적은 절강영파의 진흥창은 광저우에 오기 전에 상하이에서 옷가게를 열어 양인에게 양복, 치파를 자주 만들어 준다.

해방 직전, 진흥창은 양인함대 남하에 따라 여동생이 홍콩에 도착했다. 그는 광저우에서 발을 디뎠다.

당시 중산 5로 창흥가 (현신대 신대신백화점 옆)에는 수트 치파오 제복 가게의 상하이, 절강상인, 진흥창은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재봉사를 하고 있어 ‘길거리 어린이 ’라고 불리기도 했다.


대략 1952년, 진흥창과 동행 아내가 제의집을 열었는데, 그때 가게에는 나비표 재봉틀만 있었다.

그때 양복을 주문한 고객이 줄어들자 진흥창은 여장, 패션으로 대담하게 바꾸어 빠르게 세 대의 옷차가 확장됐다.

1953년, 부부는 작은 가게를 중산 5로 75호로 옮겨 북경로의 상가에 인접하고 광저우 호적에 가입했다.


문혁 때 진흥창은 충격을 받았다.

문혁이 지나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국에 대해 여전히 불안해하며 장사를 하지 못하고, 진흥창은 감히 천하를 앞세우고, 1979년 7월 1일 자영업자 면허증을 수령했다.

만년에 언론 인터뷰를 할 때 진흥창은 “전국에서 말을 못하겠지만 광저우에서는 첫 번째 카드가 있는 자영업자입니다.”라고 자부했다.


새로 개업한 제복 공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1985년 진흥창과 다른 세 명의 기업가와 광저우시 4백만장자라고 불렀다.

지난해 본보 주최'개혁개방 30주년 풍운인물'을 선정해 진흥창도 후보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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